천호동

뽀뽀뽀가 시작되고, 한국 프로야구가 시작한 그해.

서울 강동구 천호동 한증막 앞집에서 태어났다고 들었다.

그 집은 여전히 남아있고, 한증막은 공용 주차장이 되었다.

시작이 누구신지 모르지만, 저 멀리 합천 땅에서, 고령 땅에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정착한 곳이 천호동이었나 보다. 고모도, 외삼촌도, 작은 아버지도 모두 천호동에서 사신다. 그렇게 여전히 옹기종기 산다.

천호동에서 자랐다. 학교를 다녔다. 물총 싸움도, 눈싸움도, 망까기도, 처음으로 꽃을 심었던 기억도, 돈을 빼앗긴 기억도 다 천호동 골목들이다.

잠깐 성남으로 이사한 적이 있다고 들었고, 사진도 남아있지만, 기억은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처음으로 천호동 밖에서 밥을 사 먹고, 놀았다.

결혼하고 나서야 천호동을 떠났다. 어머니는 아직 천호동에 계시고, 종종 천호동으로 돌아간다.

쇠귀 신영복 선생님의 호가 우이동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럼 나는 천집으로 해야 하나? 라는 생각한 적이 있는데…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재미있지도 않고, 멋있지도 않다.

천호동 골목골목을 사진으로 남겨놔야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 벌써 몇 년째다.

흑백사진이 좋을 것 같다.

내 고향이다.

(2021.12.01.)

“천호동”의 2개의 생각

  1. 선생님 연락이 늦었습니다. 건강하게 잘 지내시나요?
    제가 처음 선생님을 뵙고 공부했던 시간이 엊그제같은데
    벌써 슬슬 새치라는 걸 거울로 보며 갸우뚱하는 30살이 되었습니다.
    딱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선생님과 같은 시간대를 걷고 있네요.
    12년 전 선생님과 주고받았던 메일이 그 때의 저에겐 매우 소중했나봅니다.
    우연히 메일함 정리를 하던 중 보관된 메일을 보고 이렇게 찾아뵙습니다.
    지금은 제가 잠시 멀리 있지만, 무더운 더위가 가시고 세상이 다시 한번 덧칠해질 때쯤
    철없던 제자였던 제자신에게 딱밤 한 대 쥐어박고 싶은 글을 보며 반성하고 멋지게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1. 아이공… 정오야. 여긴 또 어떻게 찾아왔니? 나도 드문드문하는 곳인디… 참 반갑다. 잘 지내? 만나자 만나자 한지도 한 10년은 지난 듯 한데… 돌이켜 보면 덕분에 참 즐거웠다. 보자. 나머진 만나서 하자. 한국돌아오면 연락햐. 건강하고. 늘 그렇듯 씩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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